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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인생] 넷플릭스 추천 명작 5위영화리뷰 2024. 1. 23. 12:20반응형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
중국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인접 국가이면서도 역사 문화적으로도 큰영향을 준 나라입니다.한국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은 중국과 적이든 동맹이든 관계가 있었구요.
아주 오랬동안 중국의 문자와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나라 입니다.
그럼에도 근대화 이후에는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중국과는 상대적으로 교류가 작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근대 서구문명의 중국을 인식하는 일이 잦습니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의 일련의 작품들은 근대화 이후에도 중국과 중국인이 만들어내는
문화 예술적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줍니다.
인생은 그런 저력을 보여주는 영화 입니다. 문화 양태가 다른 서구인과는 조금 다른 인생관,
그리고 가족관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한 것이 한국이인 저로써는 오히려 축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고사성어로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 새옹이라는 사람의 말과 관련된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문구 인데요.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이 알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불행한 일이 전화위복이되고 좋은 일이 화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말인데요.
요즘에는 그 말이 더욱 더 절절하게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격동의 시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20세기 초 중반의 중국 역사의 변화 속에서 한명의 중국인이 겪어야 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희노애락을 겪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절 이념과 전쟁 사회 변혁을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한 인간을 통해 가슴아픈 중국의 역사에 직면 합니다.
영화 인생은 1994년에 대만에서 처음 개봉하고 한국에는 칸느 그랑프리 이후 1995년 5월에 개봉합니다. 중국에서는 개봉을 못하다가 나중에 개봉하게 되는데요.
아마 공산당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판단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1. 도입부
도박에 쩌든 한 인간이 등장 합니다. 부유한 지주의 자식인 푸궤이 입니다. 정말 탐욕에 쩌든 고약한 얼굴 입니다. 매일 도박을 해서 돈을 잃고 걷는 것도 싫은지
몸종에게 업혀 집에 들어 옵니다. 일은 하지 않고 밤새 도박을 했기 때문에 낮인데도 잠자리에 들려고 하죠.
아내는 제발 도박을 그만 둬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박장 까지 찾아와 제발 도박을 그만둬 달라고 하죠. 간절히 부탁을 하는데도 오히려 화를 냅니다.
심각한 상황에 가산을 탕진할 것을 염려한 그의 아버지와 아내 지아전은 통 사정을 하지만 듣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 지아전은 딸 펑샤와 집을 나갑니다.
심지어는 아들을 임신한 상태로 말이죠. 임신한 아들의 아명은 부두 입니다. 절대 도박하지 말라는 뜻으로 지었을 정도로 그녀는 도박을 질색합니다.
결국 연이은 도박으로 인해 집안의 모든 재산을 탕진 합니다. 그와 도박을 한 자는 룽얼이라는 자인데, 그는 원래 그림자극을 했던 사람인데 사기꾼 같습니다.
결국 도박빚으로 푸궤이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집문서가 룽얼에게 넘어가고 그 충격으로 푸궤이의 아버지는 사망합니다. 결국 푸궤이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어머니와 거리로 쫓겨나게 됩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푸궤이는 죄책감으로 도박도 끊고 노점상이지만 근근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 지아전과 딸 펑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요우칭이 돌아옵니다.
가족이 돌아왔으니 노점이 아니라 돈 벌이를 해야했기에, 원래 조금 소질이 있었던 그림자극을 하면서 돈벌이를 합니다. 원래 가게를 열려고 해봤지만 돈은 없었고
도박으로 자신의 재산을 가져간 룽얼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통사정을 하지만 룽얼은 돈은 빌려주지 않고 그림자극 상자만 빌려준 것이죠.
이전부터 도박장에서 허구헌 날 듣던 그림자극에다가 도박에 지고 나면 심심풀이로 그림자극을 했기 때문에 실력이 있었습니다. 도박을 하면서 그래도 완전히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전부터 꾸준히 한 탓인지 그림자극을 직업삼자마자 처음부터 꽤 잘하고 반응도 좋습니다.
작품에서 그림자극은 끝까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화 인생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관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푸궤이가 자기 자신처럼 아끼는 물건 입니다.
그러나 곧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이 발발합니다. 국공내전이 시작되자 그는 국민혁명군에게 징집되었습니다. 여기서 동생을 찾아 국민혁명군에 입대한 촨씨를 알게 됩니다. 국민혁명군은 참패를 하고 있었고, 부상자들은 치료는 커녕 한곳에 모아두고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촨씨는 홍군은 포로에게 친절하니 홍군이 오면 손들고 저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날 푸구이, 전씨와 춘성은 눈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벌벌 떨다가 춘셩이 어디선가 구해온 코트 덕에 추위를 이겨낸고 잠이 든다. 눈을 뜨니 국민혁명군이 자신들만 남겨두고 후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코트는 촨씨가 찾는 동생의 코트였던 것. 촨씨는 이를 보고 어디서 찾아왔냐고 길길이 날뛰고, 손을 들지 않고 시체 더미를 뒤지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촨씨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푸구이와 춘성도 도망치지만, 인민해방군에게 곧 붙잡히고,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살되지 않았다. 아촨, 즉 촨씨는 국부군의 패전을 직감하면서 푸구이와 춘셩한테 홍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고 여차하면 사살될 수 있으니 항상 손들고 다녀라고 충고를 해준다. 정작 본인은 동생 코트에 정신이 팔려 헐레벌떡 뛰어다니다가 저격수의 총을 맞고 죽는다.
푸궤이는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인형 덕분에 밤에는 해방군 병사들 대상으로 위문공연을 하고 낮에는 보급품 운반이나 대포 미는일 등의 짐꾼 생활을 하며 인민해방군에 종군한다.
전쟁이 끝나자 푸궤이는 이렇게 인민해방군과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한 제대군인임을 알리는 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포로가 되었던 춘셩은 국민당군 때부터 자동차광이어서 차를 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운전병으로서 홍군에 입대하여 계속 군에 남는다.
2. 사건의 전개 (갈등의시작)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푸궤이는, 생계를 위해 물배달을 하고 있는 아내와 마주치게 된다. 중국에는 물이 귀한지방이 많기 때문에, 우유배달하듯이 이렇게 물을 끓여 배달하는 일이 있어서 물배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딸 펑샤가 열을 앓다가 농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귀가 완전히 먹은 것은 아닌 듯, 자전이 펑샤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푸궤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을 촌장인 뉴촌장은 푸구이의 집을 차지했던 룽얼이 반동분자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 부분이 지주의 자식이었던 자신이
결국 살 수 있었던 것이 도박으로 인한 가사 탕진이라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룽얼이 인민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공산당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롱얼의 대저택(이전 푸궈이의 집)을 인민들의 숙소로 제공할 것과 곡식창고를 열어 인민들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격분한 롱얼이 공산당 관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반혁명 사보타지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이 때 뉴촌장이 "자네 집 목재 참 좋던데? 7일 동안 계속 불탔지" 라고 가볍게 농담을 하자 거기에 푸궤이는 "그거 우리집 목재 아니라. 반혁명자 집 목재죠"라며 둘러대버립니다.
"도박으로 재산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고 생각한 푸궤이는 몸서리치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룽얼이 사형당한 이유는 공산당관리를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다 불태워 사보타지죄로 사형당했기 때문에, 푸궤이가 집을 안 잃었다는 가정하에 순순히 공산당관리 말을 들었다면 사형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전에 지아전이 푸궤이에게 돌아올 때 친정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많은 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했는데요 그녀 또한 친정에 있었으면 인민재판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룽얼의 인민재판을 구경하던 푸궤이는 갑자기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자기도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해 했습니다. 마침 사형선고를 받고 끌려가는 롱얼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곧장 집으로 뛰어가는데 집으로 허겁지겁 돌아가던 중 총성이 들린다. 잠깐 근처 나무에 오줌을 싸려던 푸궤이는 총성에 놀라 그만 바지에 오줌을 쌉니다.
집으로 돌아간 푸궤이은 지아전에게 롱얼의 총살형을 알리고 온 집안을 뒤져 인민해방군의 제대군인 증명서를 허겁지겁 찾게 됩니다.
그러나 그 증명서는 푸궤이의 겉옷 주머니에 들어간 채로 지아전이 세탁하는 중이었다. 푸궤이는 급히 옷을 꺼내 군데군데 찢어진 증명서를 잘 말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그제서야 안심 합니다.
훗날 푸궤이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한 펑샤의 남편 완얼시가 이 증명서를 보고는 어르신 혁명영웅이셨네요!라고 놀라며, 마치 영웅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푸궤이를 바라봤습니다.
얼마 후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푸궤이가 사는 마을 사람들도 좋아라 하면서 집집마다 철 공수를 합니다.
토법고로를 돌리고 조리기구가 없어지자 난생 처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당시 공산당은 이제 집에서 밥을 할 필요가 없다. 나라에서 다 먹여살려준다며 부엌을 없애고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합니다. 이 공동식당을 흔히 캔틴(Cantin)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대약진운동 후의 대기근으로 인한 초대형 아사 사태의 전조가 됩니다.
대약진 운동의 농업집단화 항목에 써 있는 공동식당. 영화에서는 이 공동식당에 대해서 니우는 '배고프면 공동식당으로 오면 고기고 생선이고 배터지게 먹을 수 있어.'라고 한다. 이게 처음에는 (1958)에는 너나할거없이 음식을 풍성하게 먹고 그랬지만, 이후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기근이 찾아오자 풀죽같은 음식이나 먹으며 겨우 끼니를 잊거나 이마저도 없어 쭐쭐 굶거나 풀뿌리, 나무껍질이나 벗겨먹는것이 일상이 되었고, 결국 이후 정권을 잡은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이런 공동식사제도를 폐지했습니다.
펑샤는 여전히 어머니의 배달 일을 돕고 있었는데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이 귀가 안들리는 그녀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이를 요우칭이 목격한다. 화가 나서 달려들지만 쪽수에 밀려 이기질 못하자, 골목대장 아이가 밥먹는 틈을 노려서 뜨거운 국수에 매운 소스를 듬뿍 담아 머리에 퍼부어 복수를 한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화가 나 길길이 날뛰자 처음에는 푸구이도 애들끼리 싸움인데 진정하라고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반동적인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그러자 총살당한 룽얼이 생각났는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아들을 개패듯이 두들겨 패 무마시킵니다. 이 장면이 아주 동양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명 장면이죠.
이런 환경 속에서 푸궤이의 아들 요우칭은 집에서 염소를 길렀는데, 이를 어찌나 소중히 여기던지 평소에도 근처에 올라가 염소 먹일 풀을 가득 뜯어오고, 학교에 있는 도중에도 집에 뛰어와 염소에게 먹이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으로 철 공출이 되며 이 염소 역시 공수되고 마는데, 염소를 보낼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마을에 염소를 모아놓은 곳까지 따라가서 자신의 염소에게 밥을 주는 일을 계속합니다.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며 어른부터 어린애까지 밤낮으로 혹사 당한다. 이 마을에선 제철생산작업을 하고 있었고 요우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이런 일 때문에 요우칭이 잠이 모자라 너무 피곤해 학교를 가기 싫어했는데 푸궤이는 부득불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도 담장 밑에서 졸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무너진 담 밑에 깔려 사망합니다. 앞서 심하게 자신의 아들을 매질하던 푸궤이의 모습 때문에 이 장면이 더 슬프고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하필 그 트럭에 타고있는 높으신 사람은 국공내전 시기 푸궤이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며 다니던 후배 춘셩입니다. 그는 운전수를 계속하겠다고 공산당에 남았던 것인데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승진을 했던 것이죠.
간부인 구장이 되어 마을로 금의환향하려 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의 직책으로 현재는 시당 서기(공산당의 시 우두머리로, 당이 행정에 우위를 가진 중국의 사정상, 시장보다 높다)이나 현(군)당 서기에 해당한다. 춘성이 국공내전이전에 떠돌이 그림자극단 단원이었음을 상기하면 몇년만에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죠.
춘셩은 푸궤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에서 보상을 하려고 하지만, 푸궤이와 자전은 아들을 죽인 춘셩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원작소설에서는 요칭은 교통사고가 아닌 매혈하다가 과다출혈로 죽고, 매혈을 담당한 여자의 남편이 춘셩이었다. 요우칭과 사이가 좋은 남매였던 펑샤 역시 동생의 죽음에 분노해, 동생을 죽인 차의 유리창을 깨고 한바탕 난동을 피운다. 이때 운전수와 실랑이가 붙지만, 춘셩은 죄책감에 펑샤를 놔주고 본인은 혼자서 걸어 갑니다.
3. 클라이 맥스
세월이 흘러 1960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이 중국 전체를 뒤 흔듭니다.
푸궤이는 예전에 룽얼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고, 요우칭을 치어 숨지게 한 춘성이 미안한 감정에 푸구이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거절하고 아내와 함께 물장사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냅니다.
이 시기에 뉴촌장의 중매로 딸 펑샤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게 됩니다.
완얼시는 원래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친후 발을 절게 되었습니다.
마오쩌둥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혜택을 받아서 근로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단지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여 같은 장애인인 펑샤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완얼시는 공장의 홍위병 지도자이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장인에게는 매우 예의바르게 행동합니다.
완얼시의 경우는 지역내 작업장 즉 공장의 근로 감독관이므로 현재의 직위로 따지면 부장~상무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배하던 시기라서 결혼예물은 마오쩌둥 어록과 마오쩌둥 뱃지, 결혼예복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아닌 인민복이고, 축시는 마오주시, 축가도 마오찬양가가 나온다. 실제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개인의 삶 속에도 녹아 있는 당시의 아픈 추억이 녹아 있습니다.
이때 요우칭을 본의 아니게 죽인 이후로 아직도 이 가족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춘셩은 나중에 푸궤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만 지아전은 그 선물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 뒤에 푸궤이의 말이 걸작인데, 바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들면서 '뭐? 이거 마오주석님인데?'
이후 푸구이는 사위 얼시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습니다.
비투회는 홍위병의 사설 인민재판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왕교수처럼 조리돌림으로 끝났지만, 심한경우는 홍위병의 린치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춘성은 주자파로 찍혀 모진 고생을 당하고, 아내까지 자살하는 비극이 닥치게 됩니다.
견딜 수 없게 된 춘셩은 자신의 모든 돈을 푸궤이에게 건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하지만 푸궤이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야 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나?'라고 하면서 춘셩을 다독입니다.
지아전 또한 돌아가는 춘셩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격려해줍니다.
지아전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춘셩을 용서해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한편 매번 소식을 전해주던 뉴촌장도 푸궤이를 찾아와, 그림자극 도구도 반동으로 몰리니 태울 것을 강요합니다.
푸궤이는 결국 인형극 상자를 다 태우는 것을 지켜본 후 쓸쓸히 사라 집니다.
얼마안가 푸궤이는 뉴촌장에게 중매해줘 고맙다고 예물(달걀)을 들고 찾아오는데 뉴촌장은 씁쓸하게, 자신이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푸궤이도 여기에 대해서는 '왜 죄다 주자파 반동으로 몰리는거지?'라고 불만을 표합니다.
펑샤는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란 의사들은 죄다 반동으로 분류되어 홍위병들이 죄 잡아가 버립니다.
제대로 된 의사는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지키고 있었던 건 생초짜나 마찬가지인 학생들 뿐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 베테랑 의사-간호사는 모두 반동으로 비투회에 끌려가고, 졸업도 안한 의대생과 간호대생들이 의사, 간호사랍시고 병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온 푸궤이 가족은 베테랑 스탭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완얼시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비투회에 끌려가 있던 대학 교수급 전문의 왕교수를 빼와 진료를 보게 하려 합니다.
홍위병들이 이를 거부하려 들자 "왕교수는 이전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한 적 있소. 우리가 그의 눈 앞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아 그가 틀렸음을 보여 줍시다!"라고 즉석에서 말을 지어냈습니다. 선동당한 홍위병들이 그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꿔 바로 그를 데려 옵니다.
석방된 왕교수는 홍위병의 등쌀에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어, 이를 안타깝게 본 푸궤이는 밖에 나가 만두를 사와 왕교수에게 줍니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샤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궤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두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합니다. 문혁때는 미식도 부르주아의 행동이라는 이유로 음식점들이 죄다 문닫거나, 만두나 죽같은 음식만 팔았습니다.
이때 갑자기 펑샤가 산후 출혈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홍위병 의대생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런 우스꽝스럽지만 안타까운 상황속에서 딸 펑샤는 과다출혈로 사망 합니다.
여기서 재밌는것은 펑샤의 아들은 이름을 만터우로 짓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옛 사람들이 말하길, 음식 이름으로 사람 이름을 지으면 염라대왕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수명을 일찍 정하지 않아서, 그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홍위병들이 들었다면 봉건사회의 잔재+미신을 믿는 반동이라면서 펄쩍 뛰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
4. 마무리
1940년대 부터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 등 역사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사건들이 모두 끝난 이후 입니다. 자식 둘을 모두 잃은 그들은 완전히 체념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평온한 시대가 찾아온 이후의 이야기 입니다. 노년이 된 푸궤이와 지아전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터우의 나이로 봤을 때는 1970년대 중반 입니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공식적인 종말은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1976년이지만, 실제로는 1969년이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홍위병 덕으로 정권을 되찾은 마오쩌둥은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쓸모없어진 홍위병들을 진압했습니다. 이후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나 반달행위와 같은 일은 더이상 없어집니다.
이후 홍위병들을 포함한 학생들은 상산하향 운동으로 시골로 보내져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삽질을 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남겨진 가족은 사위인 완얼시와 그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만터우(馒头) 뿐 입니다. 에필로그에 나온 만터우의 외관이나 펑샤의 묘 앞에 늘어진 만터우의 연령대별 사진이 담긴 액자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아마 만터우는 7~8 살 쯤 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할아버지 옆에서 할머니의 약을 들고 오거나 할아버지가 밥 지을 때 불을 피우는 식으로 돕겠다고 말합니다.
할머니께 '착한 아이' 라는 칭찬을 듣는 걸 보면 나잇대에 안 맞게 꽤 의젓한 아이로 추정 됩니다. 성격은 딸인 펑샤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들 요우칭과 딸 펑샤를 잃었기에 매년 요우칭과 펑샤의 묘에 온 가족이 성묘를 하고 만터우의 성장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펑샤 묘에 보여주며, 성묘가 끝난 뒤 가족의 오붓한 식사장면과 함께 만터우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푸궤이의 말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그 전에 만터우가 병아리를 사와서 병아리는 어디에 두면 좋냐고 자꾸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만터우의 말을 들은 푸궤이는 식사하기 전에 자기가 썼던 그림자 연극의 소품들을 담아놨던 상자를 꺼내며, 병아리를 여기에 담으라고 한다. 병아리는 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야한다는 게 그 이유. 한평생 그림자극용 소품상자를 그토록 소중히 여겼으나 이제는 외손자에게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주는 것을 통해 푸궤이의 삶의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앞서 그림자극이 푸궤이가 그려내는 또 하나의 이상적인 인생을 나타낸다 하였는데, 그것을 담고 있던 세계(상자)를 공식적으로 외손자에게 승계하는 장면이다. 그림자 도구처럼 병아리는 만터우의 또하나의 인생을 대변하며, 푸궤이가 이야기할땐 이미 성장한 닭이었는데, 닭의 새끼가 병아리라는점에서 만터우에 비유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병아리를 키워서 더 큰 동물을 사서 부자가 되자는 말은 자기 아들이었던 요우칭이 처음 동물을 기르게 될 때 나눴던 대화입니다.
다만 그땐 푸궤이가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라 손자 만터우에게 얘기를 할 때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다르게 됩니다.
5. 명대사
'우리집은 닭과 같다.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되고, 소 다음에는 바로 공산주의다. 매일 고기랑 만두(고기만두)를 먹을 수 있지.'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 양이 자라면 소가 되지. 그리고 소 이후에는... 그때면 만터우 너도 어른이 될 거란다.
그때쯤이면 너는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살기 더 좋아질 거야.'
6. 영화 총평 및 관람평
저는 이 작품을 KBS 1에서 방영해준 일요영화에서 처음 접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영화 르네상스에 KBS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997년에는 영화 100주년을 맞아 대작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는데, 그 수준이 왠만한
영화학과 개론이나 원론 수업보다 수준이 높았습니다.
각설하고, KBS 1의 특징은 더빙인데요. 실제로 더빙으로 영화를 보면 (한국 더빙 환경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 훨씬 스토리와 장면 이해도가 올라갑니다.
많은 분들이 원작의 배우의 목소리와 원어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한국의 재능이 넘치는 인력과 성우 시스템은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예컨데, KBS1 에서 반영한 느와르 영화 좋은 친구들 (1990년) 같은 작품은 저는 무조건
더빙작품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시 이 작품도 더빙으로 보면 훨씬 더 한국어로 표현된 연기 전달력이 뛰어 납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저는 누군가에게 꼭 봐야할 영화 작품을 꼽는다면, 영화 인생을 추천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제가 이선균 배우님을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다른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이 작품을
소개했을 것 같습니다.
삶을 다 살아낸 이후에도 죽음 이전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안락사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가 되더라도 동북 아시아의 문화권에서는
가장 늦게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은 행복과 안락한 삶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7. 출연 배우 및 역할 소개
푸구이(福贵): 갈우 성은 쉬(徐:서)씨이며, 이름은 복 복, 귀할 귀자를 써서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서복귀이다.
자전(家珍): 공리
펑샤(凤霞): 장루(张璐, 어린 펑샤 역), 샤오총(본명 肖聪, 이후 肖婕으로 개명, 청소년 펑샤 역), 류톈치(刘天池, 성인 펑샤 역) ]
요우칭(有庆): 둥페이(董飛)
촌장: 뉴번(牛奔, 1935-)
춘성: 궈타오(郭涛)
완얼시: 강무
룽얼: 예대홍
촨씨(老全): 이연의(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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